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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지갤러리 전시


 

정영호, 허연화, 홍기하 작가의 3인전, 827일까지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들에 주목하는 기획 전시

 

페리지갤러리는 2022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 ‘Perigee Unfold’의 첫 번째 전시로 정영호, 허연화, 홍기하 작가의 3인전 를 8월 27일까지 개최한다. ‘Perigee Unfold’는 꾸준히 자신의 작업 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는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들에 주목하는 기획 전시 프로그램이다.

는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매체의 존재를 의미 있게 느끼는 젊은 미술가들이 서로를 마주 보는 이야기다. 작가가 창작의 매개체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터페이스’를 설정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인터페이스는 소프트웨어의 접근 편의성과 관련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UI)를 의미하지 않으며, 우리와 실재 사이를 매개하여 세계를 감각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자 틀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이를 미술의 영역에 국한한다면 미술의 매체(medium)가 될 것이며 이번 전시는 이에 더하여 우리가 주변 세계를 감각하는 기반이자 조건인 오늘의 미디어(media)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자 한다.

어떠한 매체를 선택하고 본인만의 매개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창조성의 주요한 요인이며 각자의 차이를 만든다. 만일 모두가 같은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결과물을 도출해낸다면 미술 현장은 천편일률적인 시각성으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상공간과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로서의 전시장을 다소 지루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가상의 경험이 번역되어 물질의 세계로 옮겨오는 다양한 양상을 볼 수 있을 때 오늘의 미술은 비로소 흥미로워진다. 

▲홍기하는 오늘날 크고 무거운 조각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일을 일종의 저항이라고 보며, 환경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각만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는 전통적인 조각의 비효율적인 재료와 무게, 제작 방식을 어느정도 고집하며 그 안에서 동시대적 가능성을 찾아나간다. 이번에 전시된 홍기하의 작업들은 모두 석고 조각이며 복제 가능한 에디션이 아니라 직조 방식을 사용한 각기 유일한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가상공간이 존재하기에 오히려 더 깊게 전개되는 물질과 실존에 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정영호는 스크린의 RGB 픽셀이나 3D 프린트된 개체의 질감 등을 사진의 전면에 드러내며 ‘디지털 물질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 왔다. 그의 최근 작업에서 최초의 원료는 인터넷이라는 공론장에서 충돌하는 단어들이다. 작가는 정치적이고 예민한 주제어들의 ‘키워드 언급량’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데이터의 흐름을 형태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데이터의 그래픽은 3D 프린팅 조형물로 출력된 후 다시 사진으로 촬영된다. 컴퓨터 그래픽을 닮은 정영호의 사진은 결과적으로는 현실 공간에서 실제 조형물을 촬영한 것이다. 복잡한 작업 과정이 납작하게 압축된 한 장의 사진에서, 표면에 드러나는 데이터의 파편들은 명확한 정보로 습득되기 어렵다. 이러한 불명확성의 전략은 물질세계에 발을 딛고 데이터 세계를 바라보는 상황을 의식한 결과로써 간접적 경험의 불투명성을 드러낸다.

▲허연화는 다매체 설치를 통해 공간 안에 풍경을 그려내는 작업을 전개한다. 특히 규모가 아주 크거나 다양한 층위에 있는 시공간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작업에 관심을 두며, 그 과정에서 평면과 입체, 데이터와 물질 사이를 오간다. 이는 작가가 조각을 처음 시작하면서 체감했던 물리적인 공간의 유한함을 가상공간의 무한한 속성과 접합시키면서 나타난 작업 방식이다. 서로 다른 복수의 공간 이미지들이 담긴 다면체나 주름진 평면은 이러한 사례들이다. 또한 허연화는 현실 공간에서 경계 없이 흐르는 물질인 물에 주목하여 투명하고 흘러내리는 물성과 연결의 감각을 탐구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조각이라는 단일 매체를 탐구하거나(홍기하),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사진으로 귀결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거나(정영호), 평면과 입체, 가상과 물질 사이를 횡단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나간다(허연화). 이들의 작업에서 매체와 창작의 상관관계는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표면들의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더 주목해 볼 만한 것은 디지털과 물질세계가 공존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반응하는 각자의 방식들이다. 구체적인 물성은 다르지만 세 작가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가상성보다는) 물질성이며, 여전히 미술의 기반을 이루는 ‘물질’에 대한 감각을 갱신하려는 과정들을 엿볼 수 있다. 070-4676-7096